‘N수생’의 사회, 저출산과 현장직 차별 뒤엔 무엇이 있었나

이미지 출처: 한국대학신문

한국의 대다수 학생들은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화이트칼라 직업을 향해 질주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교육의 성취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명령은 암묵적인 사회 규범이 되었고, 이는 세대를 관통하며 뿌리내렸다. 한국은 극심한 빈곤으로부터 고작 세 세대, 독재와 경제적 침체로부터는 불과 두 세대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성공’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집단적 기억에 각인된 생존의 증표로 기능했다. 차별과 억압, 식민 지배와 강제노동의 기억은 국민으로 하여금 ‘다른 종류의 직업’을 꿈꾸게 했다.

이런 사회적 심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결탁해, 블루칼라 직업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고졸 기술자’는 학교 현장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으며, 블루칼라 직군에 대한 진로 탐색이나 인턴십 기회는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런 길’을 꿈꾸는 학생이 교사나 부모로부터 노골적인 실망과 편견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교적 위계의 그림자 아래, ‘머리 쓰는 일’은 ‘몸 쓰는 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적 편향은 결국 ‘수능’이라는 괴물로 수렴된다. 수능 시험 당일,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고, 경찰이 지각 위기의 수험생을 에스코트하는 장면은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교육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구권의 SAT가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조차 한국의 수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덜 결정적이다. 수능은 단지 시험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를 단칼에 가르는 일종의 의식이자 졸업장이며, ‘성공한 인생’으로 진입하는 문턱으로 기능한다.

문제는 이처럼 정해진 길 이외의 삶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데 있다. 사무직을 꿈꾸는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그 외의 선택지를 보여주지 않는 사회, ‘그런 길’은 실패로 낙인찍는 문화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수년 동안 시험 준비에 매달리며 단 하나의 정답을 향해 몰려가고 있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과 사회 전반이 대안적 진로를 체계적으로 배제해왔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경제적 요인이나 가치관의 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한국 청년은 타국의 청년에 비해 훨씬 늦게 사회에 진입하며, 교육과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은 가계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고도 기대만큼의 소득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명문대 졸업’이라는 간판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어야 한다.

블루칼라 직업은 단지 ‘덜 성공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또 하나의 ‘성공’의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이 길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한국은 현재 낮은 출산율과 낮은 이민율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대로라면 인구는 급감하고, 사회는 유지되지 않으며, 미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한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것을 재생산하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학생들의 꿈을 다양화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모든 직업에 정당한 존중을 보내는 사회의 변화다. 우리는 선택지를 보여주지 않은 채, 오직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는 이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