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금의 대한민국은 대 입시시대에 진입했다. 수능은 이른바 ‘의대고시’가 된지 오래고, 고등고시도 아닌 대입시험에 청년들이 몰려 2수, 3수를 넘은 ‘N수생’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입은 인생의 연속된 순간 중 하나가 아닌 마치 삶의 궁극적 목적처럼 그려진다. 원래도 대단히 학벌주의적인 한국 사회에 둔화된 경제성장으로 인한 좁아진 등용문이란 악재가 겹친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아직까지도, 블루 칼라 직업은 외면받는가?
근래 많은 블루칼라 직종들이 화이트칼라 직종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렇게 낯선 얘기는 아닐 것이다. 공급이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임금이 오른다는 당연한 법칙이다. 고령화로 인해 육체노동자의 공급은 급격하게 줄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받는데도 한계가 분명해 수요는 오르고 있다. 또한 2020년대부터 시작된 인공지능(AI) 광풍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블루칼라 직업이기에, 그 경제적 장래는 밝다고 할 만 하다. 미국에선 억대 연봉을 받는 배관공이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서구 선진국에선 블루 칼라 직업이 재조명받는 추세다.
그렇다면 화이트칼라는 어떤가? 다가오는 AI 혁명이 어마어마한 수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대체해버릴 것이라고 여러 미래학자들과 기업가들은 말한다. 훨씬 싼 값으로 인간의 사무적 노동을 갈음할 수 있을 거라 예측되기 때문이다. 설령 미래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대학을 돌업하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로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2차 시장으로 취업시장이 나뉘었고, OECD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학진학률로 넘쳐나는 대졸자들에 비해 1차 노동시장은 거의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저성장의 늪에 빠져가는 우리나라의 제조업 중심 경제는 더 이상 구직자들에게 충분한 화이트칼라 직업을 제공할 수 없고, 고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 고등교육 이수 유무는 더이상 유의미한 임금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이점과 관계없이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블루칼라를 외면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사무직에 취직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블루칼라 직업을 천대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남아있다. 고래로 내려온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가 한국의 사회 근간에, 우리의 의식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사농공상이란 무엇인가? 사(士)는 곧 선비, 농(農)은 곧 농부, 공(工)은 곧 물건을 만드는 장인, 상(商)은 곧 상인을 이름이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한국을 포함한 동아 문화권에선 위 순서대로 직업의 위계가 작동하였으며, 동아시아의 높은 교육열과 그에 반한 육체노동자의 천시는 이 가치 체계에서 기인한다.
현대에도 고소득, 고위 화이트칼라 직업에 대한 선망 내지 숭상은 흔히 말하는 사(士)자 직업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난다. 전문직과 넓게 보면 대기업의 화이트칼라 직종에 대한 동경이 이것이다. 이 직업들을 얻기 위한 제반 조건인 상위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이는 고도성장기엔 노동력의 질을 상승시켜 경제성장의 토양을 닦았으나 지금은 경제적 현실과 사람들의 인식 사이 괴리를 발생시키고 있다.
남은 농공상(農工商)은 어떠할까? 전체 고용의 6%만을 차지하는 농, 어업은 제외하고, 나머지 공상(工商) 중 상(商)은 명실상부 현대 자본주의의 주역이라 칭할만 하다. 중상주의를 거쳐 태어난 근대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부를 창출하는 상인들은 시대의 총아로 올라섰고, 거상(巨商)과 재벌들의 권력과 금력은 최고위 화이트칼라 세력에 버금간다. 그렇다면 남겨진 것은 누구인가? 실제 생산자들인 공(工)들이다. 자본주의와 사농공상 질서가 뒤얽힌 사회에서 여전히 천대받는 것은 노동자와 생산자들, 곧 블루칼라 종사자들이다.
그러나 이 과거의 유물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고, 그 자체로 청산해야 할 하나의 낡은 구습이 되었다. 블루칼라 직업은 더 나은 경제적 여건을 제공하는 하나의 기회가 되었고, 이를 천대하는 악습은 청년들의 경제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혁파해야 할 것이다. 청년들에겐 취업의 기회를, 블루칼라 종사자들에겐 존중을, 노동시장에겐 안정을 위해서 말이다. 정부에서는 블루칼라 직업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우리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실시해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게 해야한다.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진정 그들에게 더 나은 여건, 더 높은 소득을 제공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경제적 번영을 위해 문화적 잔재를 딛고 올라서야 할 순간이 도래한 까닭이다.
2024.12.31
최윤성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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